[노동과세계] [인터뷰] 영어강사로 와서, ‘노동자’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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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말한 사람들] 제임스 C. 하들리 민주일반노조 부산본부 외국어교육지회 조직부장
어느 외국인 강사의 부당해고와 노동조합 투쟁기
[노말한 사람들]은 ‘노동을 말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다양한 직종에서 일하는 민주일반연맹 조합원들이 직접 들려주는 노동 이야기다. 노동자들이 당당한 주체로 살아가기 위해 어떤 선택을 했는지, 투쟁의 이유와 그 과정을 차분히 따라간다.
개인의 문제로만 남겨졌던 숨겨진 이야기들을 공유하며, 지역과 업종, 노조는 달라도 우리가 함께임을 확인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제임스 C. 하들리 민주일반노조 부산본부 외국어교육지회 조직부장. 사진=민주일반연맹
나는 영국 런던 북부의 전형적인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런던 중심부의 명문 사립학교를 다녔지만, 딱히 말썽을 피우지도 열심히 공부하지도 않는, 그저 연극과 소설 읽기를 좋아하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학창 시절 영어 선생님들을 좋아하며 가르치는 일에 관심을 갖게 됐고, 새로운 곳에서 영어를 가르쳐보고 싶어 한국에 왔다.
학원에서 일하며 노동자로서 우리의 권리가 얼마나 침해당하고 있는지 알게 됐다. 동료들과 노조를 만들었지만, 돌아온 것은 위협과 재계약 거부였다. 그 과정에서 우리를 위해 모인 사람들을 만났고, 연대가 내 삶을 바꿔놓았다.
영어를 가르치러 한국으로
내가 선생님이라는 직업에 매력을 느낀 것은 바로 영어 수업 시간이었다. 내가 좋아했던 선생님들은 책과 연극, 영화에 진심이었고 열정적이었다. 영국에서는 교직을 다른 일에 ‘실패한’ 이들이 택하는 차선책으로 보는 경향이 있지만, 내게는 그런 선생님들의 모습이 교직의 매력으로 다가왔다.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와 글쓰기를 학생들과 나누고 싶었다.
영국을 떠나 새로운 곳에서 영어를 가르쳐보고 싶어 성인 대상 영어교사 자격증인 CELTA를 땄다. 아이들에게 화상 수업을 해주는 비영리단체에서 봉사활동도 했다. 어린 학생들과 소통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이후 온라인으로 채용 담당자들을 통해 한국 곳곳의 학원을 소개받았다. 나는 사실상 처음 제안받은 일자리를 바로 수락했다. 면접 내내 영어 교육 이야기 대신 영화 이야기만 했는데, 돌이켜보면 그때부터 뭔가 이상하다는 신호로 받아들였어야 했다. 2022년 초 한국에 도착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일을 시작했다.
가족 곁에도 갈 수 없었던 일터
제임스 C. 하들리 조직부장이 학생들을 인솔하고 있다. 사진=민주일반연맹
학원 일이 얼마나 많은 것을 요구하는지는 근무 첫날부터 알 수 있었다. 근무시간은 길었고, 채점과 숙제 검사, 성적 입력을 마치기 위해 퇴근 시간 이후에도 자주 남아야 했다. 점심시간은 턱없이 짧았고, 수업 사이의 쉬는 시간은 5분뿐이라 다음 수업을 준비할 시간도 부족했다.
학생들을 보호하는 체계가 부족하다는 점도 충격적이었다. 영국에서 온라인 과외를 할 때는 학생이 가정생활에 관한 걱정스러운 이야기를 털어놓으면 관리자에게 즉시 보고하도록 교육받았다. 하지만 한국 학원에는 그런 체계가 없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았다. 학생이 걱정스러운 이야기를 털어놓으면 보고 여부는 강사 개인의 판단에 달려 있다. 때로는 학생의 안녕보다 진도를 나가는 게 우선인 것 같았다.
첫 번째 학원에서 일할 때, 영국에 계신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날은 수업을 견디기가 너무 힘들었고 학생들 앞에서도 여러 번 울었다. 장례식에 참석할 수 있도록 경조휴가를 쓸 수 있느냐고 물었지만, 원장은 안타깝지만 나한테 휴가를 주면 모두에게 줘야 한다며 거절했다. 그때의 나는 가족 곁에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이 그저 슬펐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순간 나 자신을 위해 제대로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것이 화가 난다.
울산의 두 번째 학원에서도 부당한 일은 이어졌다. 동료들은 밥을 먹을 시간이 10분도 채 되지 않을 때가 많았다. 우리 고용주는 우리가 원하는 때에 유급 연차휴가를 쓰지 못하게 했고, 동료들에게 병가조차 허용하지 않을 때도 있었다. 착취의 실태를 온전히 알게 된 뒤, 나는 나 자신과 동료들 모두를 위해 분노했다.
노조를 만들자 일터가 달라졌다
제임스 C. 하들리 조직부장이 현수막을 달고 있다. 사진=민주일반연맹
강사들이 각자 원장과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으리라는 걸 알았다. 그래서 뜻을 모아 민주일반노조 담당자를 만났고 노동조합을 만들기로 했다. 노조가 우리를 대신해 교섭하고, 학원도 법을 위반했던 부분을 인정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당시 우리는 희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사측이 노조 설립을 알자마자 몰아친 일들은 그야말로 폭풍우 같았다. 학원 측은 우리를 한 명씩 면담에 불러 이게 무슨 일이냐고 캐물었고, 노조를 시작한 사람이 누구든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며 위협했다. 수업을 비판하는 글을 쓰고, 실제로 결근하지 않은 날에도 결근했다며 없는 말까지 지어냈다. 원장이 내 비자 상태를 가지고 ‘크리스마스에 한국을 떠나면 돌아올 수 없을 것’이라며 협박하기도 했다.
노조 설립 이후 일터는 한순간에 적대적인 공간이 됐다. 많은 동료가 두려움에 노조를 탈퇴했고, 올해 3월 조합원 전원의 계약이 갱신되지 않은 채 고용이 끝났다. 노조를 탈퇴한 동료들은 여전히 그곳에서 일하고 있다. 우리 조합원 대부분은 새로운 일자리를 찾았지만 나는 아직 구하는 중이다. 그러면서도 집회나 기자회견 등 이 문제를 알리는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현재 중앙노동위원회에서 우리의 해고가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하는지를 다투고 있고, 고용노동부에서는 미사용 연차휴가수당 사건이 진행 중이다. 또한 사측이 단체교섭권을 무력화하려고 만든 것으로 보이는 ‘가짜 친사용자 노조’ 문제에도 대응하고 있다. 실직 상태에서 변호사 비용을 감당하기는 쉽지 않은데, 민주일반노조에서 비용의 대부분을 지원해 줘 큰 힘이 된다.
연대가 바꾼 나의 한국 생활
지난 6월 울산 워릭프랭클린·덕스어학원 부당해고 규탄 집중결의대회가 열렸다. 사진=민주일반노조 부산본부
한국에서 학원 강사로 일하는 건 무척 외로운 경험이다. 1년이 지나면 일자리와 거주지를 옮기는 경우가 많고, 고된 근무시간 때문에 사람들과 어울릴 기력조차 남지 않는 강사가 많다. 노조의 일원이 된 건 그런 내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는 일이었다. 우리의 집회에도, 지난 6월의 큰 결의대회에도 수많은 사람이 응원하러 와주었다. 그날 오직 우리를 위해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울산에 왔다는 사실에 마음이 벅차올랐다.
자신의 권리가 무엇인지조차 잘 모를 때가 많은 외국인으로서, 우리를 돕고 함께 싸워주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다는 사실에 깊은 위안을 얻는다. 불평등을 지적하고 정의를 위해 싸우며 누구도 혼자 남겨두지 않겠다는 이들과 함께 행진할 때면 짜릿함을 느낀다.
솔직히 나는 미래를 생각하는 게 싫을 때가 많다. 탐욕과 편견이 난무하는 세상을 보면 미래가 너무 암울해 보인다. 하지만 노조와 우리를 도와준 동지들은 내게 다시 희망을 줬고, 사람의 선함을 굳게 믿게 해줬다. 이번 경험을 통해 노동조합 활동과 사회운동은 앞으로도 내 삶의 일부로 남을 것임을 안다.
우리의 집회와 시위에 단 한 번이라도 와주신 동지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여러분이 보내준 연대가 내게 어떤 의미였는지는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다. 서로를 돌볼 수 있다고 믿고 기댈 수 있는 노조, 나 자신보다 더 큰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사실이 자랑스럽다.
새로운 힘을 얻어 다시 일하고 싶다. 지난 몇 달 동안 만난 이들처럼 나 역시 누군가에게 힘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들이 우리 곁을 지켜준 것처럼, 나도 가능한 한 많은 투쟁의 현장에 함께하고 싶다.
우리가 함께할 때 탐욕스러운 사장들은 결코 우리를 막을 수 없다. 그들은 그저 배 한 척일 뿐이지만, 우리는 바다다.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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