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노동뉴스-민주노총 공동기획
윤석열 정부가 ‘미조직 노동자’를 주목한다. 생경한 일이다. ‘조직’의 반대말인 미조직은 노동운동의 언어다. 조직되지 않은 노동자, 더 정확히는 사용자와 정부의 개입과 방해로 노조를 조직할 수 없는 노동자를 포괄하는 단어였다. 윤석열 정부는 이들을 다시 ‘노동약자’라 부르며 조직노동자를 강자로 규정해 사이를 가르려 한다. 지향은 명료하다. 이들을 미조직으로 남기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노조의 지향은 뭘까. <매일노동뉴스>가 민주노총의 전국 미조직 노동자 노동환경실태 정기 설문조사를 맞아 함께 미조직 노동운동 속으로 들어가 봤다. <편집자>
노조의 편제는 정책·조직·교육선전·총무 등 다양하다. 이 가운데 ‘노조의 꽃’이라 부르는 건 조직이다. 노조가 본질적으로 머릿수를 늘려 교섭하고 파업도 하는 대중조직인 이상 이들의 역할은 중추다. 이들 중에서도 노조에 가입하지 않은 비조합원을 만나고 사업하는 이들이 미조직 담당자다. 윤석열 정부가 조직노동의 반대항으로 호명한 미조직, 그들을 가장 오랫동안 자주 만나 온 미조직 활동가의 생각을 <매일노동뉴스>가 들었다. 지난 4일 오후 민주노총 교육장에서 김지윤(35) 보건의료노조 전략조직부장, 이경수(45) 민주연합노조 교선국장, 이희태(40) 금속노조 전략조직국장, 장지혜(30) 공공운수노조 전략조직차장을 만났다. 이재 매일노동뉴스 기자가 사회를 봤다.
“사회보험 확대하면 공제회가 왜 필요한가”
사회 : 윤석열 정부가 미조직 노동자 보호를 강조하고 있다. 법률도 제정할 태세다. 어떻게 보고 있나.
이희태 : 기분이 묘했다. 미조직 노동자를 호명하고, 미조직 노동자 정책을 내놓고 있다. 정부 주도라는 맥락을 빼고 보면 여느 노조에서 낼 법한 사업계획으로도 보인다. 정부가 노조의 열악한 노동자를 보호하는 역할과 기능을 그저 ‘빨갱이’ ‘좌파’ ‘이익집단’ 등으로 매도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인식이 있지 않았을까. 정부도 이런 문제를 받아 안지 않을 수 없다는 현실인식이 있었을 것이다. 다만 그저 포장지만 갈아치우듯 노조가 그간 사업의 일부로 진행한 것들을 마치 기존에 없었던 획기적인 정책인 양 포장해 발표하고, 오히려 조직노동을 기득권·카르텔로 매도하는 행태에 분노한다.
김지윤 : 구체적인 사업계획을 보면 우려도 크다. 공제회를 지원한다고 하는데 정부의 안을 살펴보면 기업 내 사적보험으로 활용될 여지가 있어 보인다. 게다가 공제회는 노조를 만들기 어려워 차선책으로 택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노조를 결성해 잘 운영하면 공제회의 사업보다 나은 혜택을 누릴 수 있다. 매일노동뉴스가 그간 다뤘듯이 산재·고용보험을 확대하고 상병수당을 제도화하면 공제회가 필요한가.
사회 : 미조직 노동자라는 표현도 그 대상이 명확하지 않다. 지금 시점의 한국 사회에서 미조직 노동자는 누구고, 그들의 지위는 어떻다고 보나.
장지혜 : 쉽게 답하기 어려운 문제다. 현재 미조직 노동자는 전체 노동자의 85%다. 이들은 모두 각기 다른 상황에 놓여 있다. 다만 조직노동자의 활동을 통해 반추할 수 있는 대목은 있다. 노조가 조직된 노동자를 교육할 때 노조의 역할은 법을 준수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물론 그 이상의 요구도 한다. 역설적으로 이렇게 법을 준수하도록 하는 조직이 없는 곳이 미조직 현장이다.
산별 내 모든 업종·산업 개입력 확대 등‘전략목표’ 다양화
사회 : 미조직 노동자 조직화를 위한 각 노조의 노력은 어떤지.
김지윤 : 보건의료노조는 1·2차 의료기관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사실상 노조가 전무했던 곳이다. 정부의 의료전달체계 개편과 맞물려 중요성이 증대되는 지점이다. 몇 년 전부터 실태조사를 실시해 왔는데 노동조건을 보면 근로기준법이 지켜지지 않고 저출생 문제가 심각한데도 육아휴직 등이 보장 안 된다. 임금도 중위임금 미만인 곳이 많다. 정부가 상급 종합병원이 아니라 1·2차 의료기관의 중요성을 키우겠다는데 결과적으로 저임금·노동법 사각지대로 의료의 중심이 옮겨져 노동권뿐 아니라 의료서비스의 질적 저하도 우려된다.
이희태 : 금속노조는 전략조직화사업을 진행하면서 산별노조로서 금속노조의 산업 개입력을 어떻게 확대할지, 제조노동자와 제조업 유관 사업장 노동자의 계급 대표성을 어떻게 담보할 수 있을지를 기준으로 조직대상자를 선정해 왔다. 산업 개입력 강화를 위해 재벌사를, 계급 대표성 강화를 위해 조선 하청과 산업단지 노동자를 조직했다. 특히 산업단지는 노조하기 어려운 작은사업장이다. 지금 고민은 전략조직화사업을 미조직사업 부서를 넘어 전 조직적 사업으로 어떻게 확대할지다. 여전히 우리 노조는 사업장 단위 관성이 강하다. 금속노조가 규약과 규정으로 지역지부를 편제하고 사업장 단위를 넘어설 조직도를 갖췄지만 현실적으로 일반 조합원은 여전히 우리 사업장의 교섭 관련 이해관계에 관심이 더 높다.
장지혜 : 의제를 중심으로 노동조건을 개선하느냐도 조직화에서 중요하다. 2021년 물류센터를 통해 쿠팡 조직화를 할 당시 폭염 대응을 시작했다. 폭염과 혹한에 취약한 노동환경이었기 때문에 해당 물류센터를 중심으로 폭염 대응 1인 시위도 하고 물류센터 내 온도도 측정했다. 몇몇 센터는 얼음물을 갖다 놓는 변화도 있었고 고용노동부 장관이 점검을 왔다. 옥외 노동자에게만 적용하던 열사병 위험 조항을 실내 노동자에게도 적용하도록 개선했다. 조직화에서 의제를 중심으로 어떻게 싸우느냐는 매우 중요하다.
이경수 : 미조직을 좁게 고민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조직화 자체가 미조직 활동이다. 연초 사업계획을 짤 때 조직된 지부나 현장에서 (조합원을) 확대하는 것, 과반노조를 만드는 것, 노조가 없는 곳에 노조를 신설하는 것 모두 미조직이라고 혼용해 쓴다. 민주연합노조는 지방자치단체 환경미화원을 먼저 조직화했고 이후 지자체 내 상용직까지 확대했다. 그것이 지자체 경계를 넘고 위탁사업장도 (노조로) 들어왔다. 이 가운데 (한국도로공사) 톨게이트 투쟁도 있었다. 하나의 직종에서 출발해 해당 지역을 중심으로 넓혀 단체협약을 확보하고, 다시 직종과 지역을 넓혀 해당 지역에서 전반적 영향력을 강화하면서 인입력을 끌어올렸다.
인력과 예산 투입해도 사업장 현안에 흔들
조직화 주체 길 잃지 않도록 기반 구축해야
사회 : 현재 우리나라 조직률은 정체를 거듭하고 있다. 지난해 기준 오히려 조직률은 감소했다. 현장에서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
이경수 : 있다. 미조직사업은 오늘 선전전 했다고 내일 조합원이 늘어나는 사업이 아니다. 선전전도, 홍보도 꾸준히 해야 하고 성과도 만들고 노동자들을 유인하기 위해 계속 노력해야 한다. 쉽지 않다. 노조 내에는 다른 조직의 요구도 있다. 그런 업무들이 있으면 선전전 같은 것을 항상 나가는 게 쉽지 않다. 매년 미조직사업을 편제하고 사람과 예산을 배정하지만 대의원대회가 되면 1년간 뭐했냐고 한다. 비판이 나온다. 한 2년 사업하다가 평가가 안 좋으면 접고, 임원이 바뀌면 접힌다. 현재 노조 중앙에 있지만 현장으로 가면 지역담당자들이 정말 힘들다. 교섭도 하고 교육도 해야 하고 조직된 현장에서 발생하는 사용자 관련 문제도 많다. 그런데 주당 1~2차례 선전활동을 하고 미조직 사업에 나선다? 정말 만만치 않다.
이희태 : 미조직 사업의 어려운 점은 많지만 조직된 노동자수를 늘리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윤석열 정부의 노동정책 기조를 보면 노조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이 더 중요할 수 있다. 노조를 하지 않는 이를 조합원으로 만드는 것보다 이들의 권익을 노조가 어떻게 대변할지가 현 시점 노조 미조직 사업의 중점일 수 있다. 이런 노력이 제한적이었던 대목을 정부가 역으로 치고 들어왔기 때문이다.
사회 : 참고하거나 모범으로 삼을 만한 사례는 없을까.
장지혜 : 공공운수노조 교육공무직본부의 사례가 있다. 미조직 담당 국장 등 간부가 팀을 짜서 미조직 사업을 실시하는데 방문 장소와 면담자, 면담 내용을 구체적으로 기록해 축적했다. 평가도 그래서 구체적으로 이뤄질 수 있었다. 몇 차례 방문했더니 우호적으로 마음을 열었고, 몇 차례 더 방문했더니 가입까지 이뤄졌다는 내용 등이 자세히 보고된다. 미조직 사업을 하는 주체가 중요한 이유다. 활동주체가 계획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하는 기반이 구축된 사례다. 교육공무직본부의 사례가 있으니 다른 본부에서도 가능하지 않을까 희망을 품게 된다. 위와 같은 사업은 지난해에 교육공무직본부 전남지부가 했고, 올해는 대전지부가 하고 있는데 공공운수노조의 전략조직위원회가 시행하는 미조직사업을 통해 사업비를 지원받았다.
사회 : 미조직 사업을 경쟁적으로 하면서 조직 간 갈등도 있는 것으로 안다. 산별 간 불편함도 있지 않나.
김지윤 : 그렇다. 보건의료노조는 의료를 예방과 재활·생활 전반에 대한 돌봄 영역 안에서 고민하고 있다. 그런데 돌봄영역은 이미 민주노총 산별 다수가 나눠 분점하고 있다.
장지혜 : 큰 문제가 맞다. 지역본부와 지역지부에서 미조직사업을 활성화하기 위해 지역간담회를 진행했는데 열에 아홉은 그 이야기를, 강하게 한다. 현장의 어려움이 크다. 간담회 참가자들은 마침 중앙회의에 참여했으니 이야기해야 한다고 한다. 현장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 자체가 큰 문제다.
이경수 : 경쟁이 치열한 것은 맞다. 일각에서는 조합비 인하 경쟁도 한다. 일부 기간 조합비를 할인하거나 유예하는 경우도 있다.
사회 : 정부는 미조직 노동자에게 노동약자 지원법을 만들어 주겠다고 한다. 미조직 노동자의 노동조건과 처우 개선을 위해 효과적인 정책 또는 방법이 무엇인가.
김지윤 :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결의 실질적인 열쇠는 초기업교섭이다. 초기업교섭을 위해 사용자단체를 특정하는 문제가 있다. 보건의료노조는 노동기본권 교섭을 요구하고 있다. 사용자단체들은 최저임금위원회와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등 각각 정부부처에 사용자를 대표해 참가하지만 교섭에는 나서지 않는다. 이런 기관들이 교섭에 나서야 한다. 사용자단체의 교섭 참여를 관행과 제도에 반영하면 교섭창구 단일화 같은 문제도 일부 해소가 가능하고, 현행 사업장 단위가 아니라 일반노조(초기업 단위) 형식의 교섭도 가능하다. 이런 고민이 필요하지 않겠나.
이재 기자 jael@labor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