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 상한제를 무력화하기 위한 끊임없는 도전, 실업급여 수급요건 강화 등 사회안전망 약화를 통해 노동자를 취업시장에 묶어 두려는 접근, 이런 노동정책에 저항하지 못하도록 노조를 범죄·비리집단으로 몰아붙여 힘을 빼는 구상. 윤석열 정부가 지난 2년간 추진한 노동정책에 대해 이병훈(66·사진) 중앙대 명예교수(사회학)가 내리는 진단이다.
이 명예교수는 정부가 여기서 멈추지 않으리라 내다봤다. 4월 총선에서 정부·여당이 승리하면 파견허용 업종 확대와 파업시 대체근로 허용, 노조의 파업시 사업장 점거 금지 등을 추진할 것이라고 봤다. 정부·여당에 편승한 일부 학자들이 참여했던 미래노동시장연구회가 2022년 12월 내놓은 권고에 포함된 내용이다. 주 단위로 제한하던 연장근로 한도를 월·분기·반기·연 단위로 확대하고, 임금체계를 직무·성과급제로 개편해야 한다고 제안하는 데에서 한발 더 나아간 권고다.
총선에서 정권 심판론이 확인되면 국정동력을 상실하고 무질서 상태로의 진입이 점쳐진다. 이 명예교수는 “(해당 국면에서) 조직노동이 일하는 시민을 걱정하고 그들을 대표하는 조직으로 나아가려는 시도와 노력을 할 수 있어야 한다”며 “(여론의 지지를 업고) 후진적 노동현실을 개선하는 것으로 이어지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 명예교수는 지난해 8월31일로 대학에서 정년 퇴임했다. 한국노동연구원, 경실련 노동위원회, 참여연대 노동사회위원회에서도 활동했던 그는 진보·노동진영의 든든한 이론가다. 대안적 노동정책 개발에 노력했던 그는 연구에 머무르지 않고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현장에 뛰어드는 행동가라 평가받는다. 퇴임 이후에도 노동문제를 진단하는 연구와 활동을 이어 갈 예정이다. 지난 12일 오후 서울 정동의 한 카페에서 이 명예교수를 만났다.
“노조 범죄집단 만들기 전념했던 정부,
앞으로 노동계 반기·투쟁 이어질 것”
- 노동시간·노동시장을 유연화하고, 걸림돌인 노조의 힘을 약화한다는 정부 기조는 올해에도 유효해 보인다. 올해 노정 앞에 어떤 길이 예상되나.
“정부는 재작년 화물연대를 시작으로 노동계를 지속해 두들겼다. 재정 투명성을 들고나왔고, 기득권 카르텔로 몰아가며 범죄집단처럼 내몰았다. 지금 현안으로 대두한 노동시간 문제, 산업안전 문제는 소상공인 표를 의식하면서 친기업적인 주장을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다른 한편으로는 조직된 노조 표를, 특히 한국노총을 무시하지 못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노조를 크게 공격 대상으로 삼기에는 부담이 있을 것이다. 선거 결과에 따라서 뚜렷한 모습을 보이지 않겠나. 제가 주목하는 것은 그동안 탄압받았던 건설·화물 분야 노동계가 올해 정부에 반기를 들고 투쟁에 나서는 양상을 보일 것인지 여부다. 그런 움직임이 있으리라 전망한다.”
- 4월 총선을 전후로 변화나 새로운 움직임은 없을까.
“2024년 가장 큰 행사인 총선은 노동정책뿐만 아니라 국정운영 전반에 대한 분수령이 될 수 있다. 최근에는 지금 굴러가는 원래 이슈 외에는 다 소강상태에 있는 걸로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정부·여당이 의회 권력까지 획득하는 다수당을 차지하면 그들이 그동안 말로만 해 왔던 노동개혁을 힘 있게 밀고 갈 수 있는 판이 열리게 될 것이다. 야당이 다수당이 된다면 정부는 정책 추진 동력을 잃는다. 정부가 내건 노동개혁도 그만큼 밀고 가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 될 테다.”
총선 앞두고 노조 때리기는 소강 ‘폭풍전야’
- 총선에서 정부·여당이 들고나올 노동 문제·현안을 점쳐 본다면.
“사실 지난 대선을 좀 돌아보면 노동 없는 대선이라고까지 얘기가 되고, 그 당시에 뜻하지 않게 우리가 얻은 선물 같은 것도 있긴 했다. 이를테면 노동이사제는 한국노총 표를 의식해서 대선을 앞두고 법이 통과됐다. 지금 우리는 대선의 연장 속에서 살고 있다. ‘윤석열-이재명의 덫에 잡혀 있다’는 표현도 나온다. 노동은 지금도 실종돼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노동이슈를 전면에 내세우기 부담스러워하는 상황을 반복할 것이고, 정부는 친기업 노동정책을 그대로 유지하리라 보인다. 진보정당도 워낙 존재감을 상실한 상황에서 노동을 선거에서 보기는 힘들 것 같다. 노동이슈를 모두가 꺼리는 상황일 테고, 정부도 총선용으로 노조를 때리거나 새로운 노동정책을 전면에 내세우겠다는 고민은 하지 않으리라 보인다.”
- 윤석열 정부의 노동정책은 어떻게 평가할 수 있나.
“‘친기업 그리고 반노동’이라는 게 가장 정확하다. 노동개혁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놓고서 정부는 노골적으로 기업 민원을 들어주는 방향으로 잡았다. 노동시간 유연화, 산업안전 규제 완화 등이다. 노동 현실을 전향적으로 개혁하고자 한다면 안전한 일터, 안정적 소득, 고용 안정성을 높이는 방향의 노력을 해야 하지만 정부는 이를 더 후퇴시키려 한다. 보통 정권 1~2년 차에는 국정과제를 중심으로 정책의 밑그림을 그리고 현실화하는 데 집중한다. 현 정부는 그 시기 노조를 때리는 전쟁을 치르는 것 외에는 한 것이 없다. 고용노동부는 존재감을 잃었다. 자기 본연의 영역에서 정책을 개발하고 사업을 추진하는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
“노동시간 ‘선 단축, 후 유연화’라면 동의 가능”
“지금 정책으론 노동시간단축 추세 유지 어려워”
- 정부는 조만간 노동시간 유연화 관련 정책을 내놓으려 한다.
“최근 대법원에서 (연장근로시간 계산 기준과 관련해) 고약스러운 재판 결과가 나왔다. 앞으로 어떤 형태이든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일단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시간 유연화는 워낙 일과 삶의 균형에 대한 국민적 욕구가 크기 때문에 만만치 않다. 이미 68시간 노동시간이 문제가 되면서 봉쇄시킨 바 있다. 총선까지는 이 분위기에서 변하지는 않을 것이다. 총선 이후 정부·여당이 동력을 얻으면 상황이 달라진다. 대법원 판결은 정부에 힘을 실어줄 것이다. 노동시간 유연화 필요성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공감한다. 다만 그 방향은 ‘선 단축, 후 유연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에 비해서 200시간 가까이 긴 연간노동시간을 평균으로 끌어내리는 게 우선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주 52시간제(연장근로 12시간 포함) 빗장을 열어 놓는 식으로 먼저 추진하면 어렵게나마 조금씩 감소하는 노동시간 단축 추세를 유지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 제조업 등 일부 업종에 대해 노동시간을 유연화하려 한다.
“인력확보가 어렵다는 이유 등을 앞세워 장시간 노동을 허용하려 한다. 시급제라서 일하는 만큼 벌 수 있다는 유인책이 있기도 하다. 수요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조직노동 입장에서는 한 곳에서 제도가 열리면 다른 분야로 퍼질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건설과 제조업은 노조운동 입장에서 주력이기도 하다. 정책 추진 과정에서 여러 논란이 불가피할 것이다. 정부는 자기 정책을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을 위해서라고 갖다 붙여 쓰는데, 이중구조 문제가 어디서 비롯됐는지에 대한 종합적 진단은 내놓지 않는다. 어떤 기대효과를 가지고 노동시간 유연화를 추진하는 것인지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현 정부 노동개혁에 대한 진정성을 의심하는 이유다.”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 말하며
당사자 왜 배제하나, 개선 의지 의심”
-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책은 조선업 상생 모델이 표본이 될 것으로 보인다. 결국 원청의 선의에 기대겠다는 거다.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를 개혁의 주요 화두로 제시하고자 한다면, 그 구조적 문제를 따지고 원인이 무엇인지, 어떻게 바꿔 나갈 수 있을지 얘기가 돼야 한다. 현 정부는 터진 사건을 자기 일거리로 만들어 내는 식으로 접근한다. 검찰공화국이라서 그런지. 실력 있는 대응이 안 되고 있다. 조선업의 경우도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들이 엄청나게 투쟁하면서 그곳만 잠시 주목하는 식으로 전개되고 있다. 철강 등 유사한 문제가 있는 현장으로는 확산하지 않는다. 대우조선해양에서도 싸움을 할 수밖에 없었던 하청노동자의 목소리는 경청하지 않는 문제도 있다. 원·하청 대표와 정부, 자기들끼리 모여서 내놓는 정책이 얼마나 하청노동자 현실을 개선할 수 있겠나.”
- 명색이 정부가 개혁하겠다며 내놓는 정책들인데, 그 내용이 너무 부실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나라, 정부의 품격을 찾아보기 힘든 시대에 들어와 있다. 노동 분야뿐만 아니라 금융, 부동산 등에서 전 정부도 하지 않았던 행보를 걷고 있다. 보수정부를 포함해 역사적 배경과 사회적 고려를 거쳐 만들어온 정책을 한 번에 뒤집으려 한다. 좋은 나라를 만들어 가려는 것이 아니라 정권의 정치적 성과·이득만 생각하는 것 같다. 자기들이 하려는 일들이 나라의 미래,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고민이 전혀 없어 보인다. 노동 분야는 총선 결과에 따라서 새로운 전선이 발생할 수도, 아니면 악화할 수도 있어 보인다.”
- 노동계나 진보진영은 총선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나.
“노동이 조직 동원의 대상이거나, 개혁의 대상으로 다뤄지는 현상은 바꿔 놓으면 좋겠다. 기업의 모든 민원을 우선시하는 정부 모습도 더는 유지해서는 안 된다. 보편적 노동권인 노동시간, 산재에 대해서도 여야는 생각이 없어 보여서 기대하기 힘들다. 그래서 가능하다면 노동계는 노동존중·노동행복 의제를 제시하고, 의제를 수용하도록 정치세력과 정치인을 압박하는 방안을 고려해 볼 만하다. 후보자를 평가하고, 꼭 당선시켜야 할 사람과 낙선시켜야 할 사람을 정해 개입하는 운동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여당 총선 승리시 윤석열표 노동개악 2탄 추진”
“한국노총은 뛰쳐나가고, 민주노총은 더 싸울 것”
- 지금까지 내놓은 노동정책 외에 정부가 추가로 제시할 의제를 전망한다면.
“노동은 민감한 이슈다. 정치권은 선거를 앞두고 조직노동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여당도 소상공인·중소사업장 지원 이야기는 할 수 있을 테지만 조직노동과 전면전을 불사하는 형태의 의제는 내세우지는 못한다. 우려되는 것은 정부가 숨겨 놓은 의제들이다. 일부 학자들이 포함된 미래노동시장연구회는 노동시간·임금체계 이외에도 선택적 근로시간제 정산 기간 전 업종 확대, 근로시간 저축계좌제, 전문직 노동시간 규제 제외, 부분근로자대표제 도입, 파업시 대체근로 허용, 파견허용 업종 확대 등을 개혁 과제로 제시해 둔 상태다. 경영계의 소원을 개혁 의제에 다 포함한 셈이다. 노동권을 심각하게 제약하는 방향으로 밑그림을 그려 놓았다. 정부·여당이 총선에 승리하면 윤석열표 노동개혁에 이 모든 것을 포함시켜 추진하려 할 것이다.”
- 정부 의도를 현실화하는 과정에서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의 사회적 대화가 다시 주목받을 것으로 보인다.
“정권 심판론 우세로 총선이 마무리돼 국정동력이 상실하면, 그것도 사실 문제다. 임기가 상당히 많이 남아 있는 상황이어서 나라 운영이 매우 무질서하게 전개될 우려가 있다. 정책 제도는 변화 없이 어수선한 가운데, 되는 일도 없으면서 그냥 흘러가는 상황이 예상된다. 탄핵 이야기도 더 많이 나올 테다. 정부·여당이 승리하면 경영계가 요구한 의제가 전면에 나오면서 양대 노총과 큰 전선이 펼쳐질 것이다. 정부가 자기 정책을 현실화하고자 한다면 경사노위에서 자기주장을 밀어붙이거나, 혹은 한국노총과 대화해 합의하는 모양새를 갖추는 두 가지 형태를 고민할 것이다. 그런데 지금 제시되는 의제는 노조를 하는 사람이라면 받기가 어렵다. 사회적 대화를 통해 의견을 모아 가고자 하는 의제가 아니다. 진정성이 없는 사회적 대화의 판을 깔아 놓았다. 한국노총은 타임오프 때문에 들어갔고, 기회가 되면 정년연장을 다뤄 볼 생각으로 보인다. 여기에 정부 의제가 추가되면 한국노총은 버틸 수가 없다. 뛰쳐 나가게 될 것이다.”
“노동계 활동영역 일하는 시민 모두로 넓혀야”
- 총선에서 정권 심판론이 확인되면 노동정책을 밀어붙이지 않을 것으로 보이나.
“동력을 상실한 상황에서는 정부 정책은 현실화하지 못한다. 오히려 그동안 탄압받았던 노동 현장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는 상황을 예상한다. 안타까운 것은, 이런 상황이 되면 사회 전반적으로 미래와 희망을 이야기하기보다는 과거를 말하는 분위기가 형성된다는 점이다. 후진적 노동현실을 개선하는 것으로 이어지게 만들어야 하는데, 이 국면에서는 노동계의 역할이 중요하다. 정치권에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조직노동이 일하는 시민을 걱정하고, 그들을 대표하는 조직으로 나아가려는 시도와 노력을 하면 좋겠다. 여론의 지지를 받을 수 있을 것이고 큰 역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 양대 노총 등 노정관계를 전망한다면.
“한국노총은 양면 전략을 쓸 수밖에 없다. 사회적 대화에 복귀하면서 여야 모두에게 걸쳐 놨다. 이번 총선에서도 거대 양당의 공천을 동시에 받을 것이다. 국회 내에서 지분을 가지면서 정책적·정치적 영향력을 확보하는 전략이다. 그럼에도 총선에서 야당이 패배하면 한국노총의 활동 무대는 (경사노위가 아닌) 장외로 옮겨갈 것이다. 아무리 양면 전략을 선택했다 하더라도 정부와 여당의 노동개악에 들러리를 서지는 못할 것이다. 민주노총의 싸움은 앞의 2년보다 조금 더 치열하게 전개될 수 있다. 지난 2년간 정부 탄압을 몸으로 버티면서 분노가 많이 쌓여 있다. 분노가 총선 전후로 표출되리라 보인다.”
- 정부의 변화를 기대할 수는 없을까.
“정부라면 2024년에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길 바란다. 후진적인 노동 현실을 더 후지게 만드는 것은 정부 역할로 볼 수 없다. 임금차별, 비정규직 규모, 노동시간, 산재 등의 현실을 과거로 돌리려는 구상은 지금 시대에 맞지 않는다.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 민생도 정치적인 하나의 언술로 꺼내고 있다. 이걸 국민들이 모르지 않는다. 노동 현실을 후진하거나 안 좋은 쪽으로 심화시키려는 일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정부에게 기대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