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리후생적 성격인 ‘자녀학자금보조비’를 특정 직렬의 공무직에만 지급하지 않은 것은 차별적 처우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적용해 직급별 차별은 위법하다고 판단한 점이 눈길을 끈다. 수당 차별에 대한 국가인권위원회 권고가 사법부 판단으로 확인됐다.
“사무지원직 다 받는데” 보험가입조사원 소송
23일 <매일노동뉴스> 취재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서경환 대법관)는 근로복지공단의 보험가입조사원 A씨 등 14명이 공단을 상대로 낸 자녀학자금보조비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지난 12일 원고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사건은 고등학생 자녀가 있는 보험가입조사원들이 자녀학자금보조비를 지원받지 못하면서 시작됐다. 2017년 공단 노사 단체협약은 “재학 중인 자녀가 있는 직원에게 학자금을 무상 지원한다”고 정하고 있다. 공단 이사회 의결과 고용노동부 장관의 승인이 있으면 학자금이 지원됐다. 공무직인 보험가입조사원들은 2018년 12월부터 2020년 8월까지 학자금보조비를 받지 못했다 .
공단은 보험가입조사원에 대해 예산이 배정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학자금보조비를 지급하지 않았다. 그러자 A씨 등은 “단체협약에 따라 학자금보조비와 지연손해금을 지급해야 한다”며 2022년 5월 공단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학자금보조비를 지급하지 않아 헌법상 평등의 원칙, 근로기준법,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남녀고용평등법)을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공단은 공무직에 대해선 ‘예산 범위에서 복리후생을 지급할 수 있다’는 복리후생 관리규정을 근거로 지급의무가 없다고 주장했다.
법원 “고교생 자녀만 있으면 무조건 지급해야”
1심은 보험가입조사원들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복리후생 관리규정은 단체협약에 위반되는 범위에서 효력이 없어 단체협약의 기준에 따라야 한다”며 학자금보조비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다. 특히 동일한 가치의 노동을 차별적으로 처우한 데 합리적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같은 직군의 공무직 근로자들이 제공하는 노동이 동일한 가치임에도 예산이 배정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학자금보조비를 지급하지 않은 것은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지적했다.
법원은 공단이 사무지원직 직군의 다른 직렬에는 학자금보조비를 지급한 점을 문제 삼았다. 보험가입조사원들은 채용절차·자격요건·근무형태가 사무원이나 근로자정보조사원, 상담사 등과 같았지만 예산이 배정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학자금보조비를 주지 않은 것은 ‘합리적 이유’가 없는 차별이란 취지다.
2심 판단도 같았다. 항소심은 “학자금보조비는 고등학생 자녀가 존재한다는 사정만으로 지급되고, 채용조건·근무조건·근속연수·업무 난이도·노동 강도 등과 무관하게 지급되는 것으로 보임에도 보험가입조사원 직렬에만 이를 지급하지 않는 것에 합리적 이유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소송기간 3년 경과? 법원 “원고 구체적 인식”
‘소멸시효’도 쟁점으로 다퉈졌다. 공단은 A씨 등이 3년의 소멸시효 기간을 지나 소송을 제기해 무효라고 주장했다. 대법원 판례는 불법행위의 요건을 구체적으로 인식했을 때를 손해배상청구권이 발생하는 시기로 본다. 1·2심은 “피고가 학자금보조비 지급을 거부한 행위가 차별적 행위라는 사실까지 원고들이 인식했어야 한다”며 “원고들은 불법행위의 요건사실에 대해 현실적이고도 구체적으로 인식했으므로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이 경과했음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판시했다. 대법원도 원심을 유지했다.
이번 판결로 공무직 또는 공무원 사이의 수당 차별에 제동이 걸릴지 관심사다. 대법원은 2014년 11월 무기계약직과 달리 기간제 노동자에게 가족수당을 지급하지 않은 것은 차별적 처우라고 판단했다. 서울행정법원 역시 2020년 3월 근로복지공단의 고용정보조사원에게 급식보조비와 가족수당, 자기계발비 등을 지급하지 않은 것은 위법하다고 봤다. 국가인권위원회도 2021년 3월 기획재정부와 고용노동부에 복리후생비를 공무원과 동일한 수준으로 개선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보험가입조사원들을 대리한 김덕현 변호사(공공운수노조 법률원)는 “복리후생적 금원에 대해서도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에 근거해 차별이라고 보고 예산이 배정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복리후생비를 차별적으로 지급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한 부분에서 의미가 크다”고 설명했다.
홍준표 기자 forthelabor@labortoday.co.kr